<굴> 관객분들에게_[前 독수리 現 이명우] 올림

하땅세
2026-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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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관객분들에게


  극단 <하땅세>의 협업 제안으로 2025년 12월 프란츠 카프카의 『굴(Der Bau)』 초연 이후 2026년 7월 재공연하게 되었습니다.


 극단 <하땅세>의 공연을 관람하면, ‘동심’과 마주하곤 합니다. 이는 오브제와 공간, 배우의 신체를 활용하여, 관객의 지성 개입을 넘어 직관적 참여까지 유도하는 하땅세만의 창작 방식에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하땅세와 카프카와의 협업에서는 흥미로운 분업이 일어납니다. 배우분들은 『굴』 밖의 여백을 표현합니다. 배우분들과 인터뷰한 글, 카프카의 텍스트, 제가 썼던 글을 각색한 것이 여백의 풍경이며 굴의 역사歷史이자 시간이기도 합니다.


 제가 겨울을 좋아하는 이유는 제철 음식인 굴을 먹을 수 있어서입니다.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굴(Der Bau)』을 발견하고 읽었지만, 그 굴이 아닌 땅굴이었습니다. 짜디짠 바다 냄새를 뒤로하며 습한 땅굴을 파 내려가듯 읽은 기억을 적어봅니다.


 소설 『굴(Der Bau)』은 외부의 위험과 불안을 피해 복잡한 미로형 지하 "굴"을 파고 살아가는 두더지인지 사람인지 모르는 하이브리드적 존재의 일인칭 이야기로만 전개됩니다.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화자는 정체 모를 소리에 집착과 강박적 증세를 보이고, 굴이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지 그 끝이 어딘지 모릅니다. 마치 공간과 심리적 묘사에 답답하고 몸을 옥죄는 기분이 드는 소설이었습니다. 자칫 잘못해 정신을 다른 곳에 판다면 길을 잃고 다시 읽어야 할 정도로 말이죠. 소설은 미완으로 끝나버리지만 어디선가 계속해서 자신만의 땅굴을 파고 사는 지금, 이 시대와 연결됨을 느낍니다. 


 2024년 12월 3일과 4일, 어느 지점에서, 국가로부터 정신적 뺑소니를 당하고 어딘가에 쓰러져있는 저를 발견하곤 합니다. 그날 이후, 내 안의 시간은 전시戰時의 감각을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부분이 소설 『굴(Der Bau)』에서 발견한 불안, 끊임없는 노동(흐름), 무언가 연결하려는 시간성과도 닮아있습니다. 본 공연은 ‘전쟁과 일상을 지탱하거나 반기하는 행위들로 이루어져 있는 *전시戰示라고도 말할 수 입니다’. 


 출연하는 아홉 명의 배우(고은별/박광선/김예진/백상민/이지연/강경천/황호찬/김승태/문숙경)와의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개개인의 불안, 허무, 강박, 공허, 우울, 죽음이라는 주제로부터 파생된 질문지와 그 반대되는 질문에 대한 컨텍스트(context)를 수집했습니다. 이후 배우들의 말은 짧은 지시문(이벤트 스코어)으로 다시 적었고, 공연에서 그 말들이 몸의 행동으로 실행됩니다. 


 그리고 십여 년 전, 현대자동차 하도급 업체에서 일을 하며 느낀 저의 감각을 더해 봅니다. 컨베이어 벨트에서 자동차의 엔진에 들어가는 부품들을 다듬는 작업이었습니다. 지루한 반복 노동 속에서 기계에 손 끼임을 주의하며 새벽 시간을 버티게 해준 희망은, 아이러니하게도 아침이 오고 있다는 ‘시간’이었습니다. 끝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시간. 본 공연은 이런 <시간>의 영토 위에 놓인 어떤 것이며, 관객분들이 보게 될 것도, 완성된 답안이 아니라 그 시간을 버티고 있는 몸과 사물의 풍경이 되길 바랍니다.


 자기 자신을 돌보다

 프란츠 카프카는 자신의 글쓰기를 두고 “나 자신을 위해 쓴다”는 기록을 남겼고 그 말엔 많은 함의가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글을 쓰지 않고서는 존재가 유지되지 않는 내적 필연성과 그의 수많은 소설에서 보았던 ‘나’를 해체하는 방식. 그리고 하룻밤 만에 쓴 소설 『선고』를 쓰고 “글이 나를 지배했다”라고 기록할 정도로 주체의 소멸성이 그것입니다. 어쩌면 카프카의 글쓰기 과정은 ‘아버지’라는 주제에서 비롯된 노동자 산재보험 회사에서 일하며 마주한 노동자와 산업화, 유대인이지만 독일어를 사용하는 정체성 등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돌보고 있음을 느낍니다. 각색의 방향성이 형성되었습니다. 카프카가 나 자신을 위해 글을 썼듯 본 공연도 “나 자신을 돌보기 위한 공연”으로써 말이죠. 


 -from. 연출 이명우-



-이 공연은 아래와 같은 형식적 장치들을 사용합니다. 모르는 용어가 있어도 괜찮습니다. 무대에서 어떻게 보이는지만 느껴져도 충분합니다.-

*타블로 비방(tableau vivant)/*아이코닉 스테이징(iconic staging)/*전유로서 빌려온 텍스트플럭서스(Fluxus) - 이벤트 스코어
프란츠 카프카 『변신』고은별 – 『불러라!』
프란츠 카프카 『법 앞에서』박광선 - 『타라!』
프란츠 카프카 『기도자와의 대화』김예진 – 『봐라!』
프란츠 카프카 『독수리』백상민 – 『싸워라!』
프란츠 카프카 『프로메테우스』이지연 – 『위대한 놀이를 하라!』
프란츠 카프카 『유형지에서』강경천 – 『수평을 맞춰라!』
프란츠 카프카 『다리』
황호찬 – 『뜯어라!』

작/연출 이명우/제작 <에게> 

『태담: sense training』 

작 아고타 크리스토프/ 연출 윤시중/ 제작 <극단 하땅세> 『위대한 놀이』
프란츠 카프카 『 어느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
밀레 『이삭 줍는 여인들』



참고 자료

1. 프란츠 카프카의 텍스트들(중.단편 소설/일기/편지)

2. 안드레아 뉴섬 이바브의 『Investigating Franz Kafka's »Der Bau«: Towards an Understanding of His Late Narrative in a Jewish Context』 (프란츠 카프카의 [굴] 연구_후기 서사를 유대인 맥락에서 이해하기), Walter de Gruyter GmbH, Berlin/Boston(출판사)

3. 조너선 케네디, 『균은 어떻게 세상을 만들어 가는가』, 조현욱 옮김, 아카넷

4. 나탈리 레제의 『사뮈엘 베케트의 말 없는 삶』, 김예령 옮김, 워크룸

5. 주디스 버틀러 『프란츠 카프카의 그림들』

6. 디르크 브로크만 『자연은 협력한다』, 알레

7. 안토니오 다마지오 『느낌의 발견(The Feeling of What Happens), 고현석 역, 아르테 



각주

  • 전시(戰示) - <삼애: the author’s body> (작/연출 이명우)에서 사용한 합성어로, 전시(展示)’와 ‘전시(戰時)’를 뜻함


  • 플럭서스(Fluxus) - “플럭서스의 핵심 개념은 "삶과 예술의 조화" 1960년대 뉴욕을 중심으로 결성된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전위 예술 운동으로 라틴어 ‘Fluxus(흐름, 변화, 변동)’에서 이름을 따온 아방가르드 예술 네트워크.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통 가치에 대한 회의와 더불어, 예술의 대중화, 예술가와 감상자 간의 경계 해소, 비상업적이고 민주적인 예술 추구가 강조되던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하여 다양한 예술적 실험과 경계 허물기를 시도한다. 회화, 음악, 연극, 문학, 디자인, 건축 등 다장르와 매체를 융합하여 표현 영역의 확장과 예술과 일상의 경계 해체를 지향하는 것이 특징. (예술가로 백남준/오노요코/딕 히긴즈/존 케이지 등이 있다)


  • 이벤트 스코어 - 플럭서스의 주요 예술형식으로 짧은 지침이다. (예: “물을 붓고, 그대로 둔다.”) / 퍼포머는 이를 수행하거나 관객이 상상하도록 열어두는 것을 말한다.


  • 타블로 비방(tableau vivant) - 사람의 신체로 어떤 장면이나 회화를 재현하는 것. "움직임이 없는 살아있음" 또는 "말과 동작이 없는 생명력"이라는 역설에 기초. 즉, 정지된 회화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살아있는 육체라는 형용모순을 담고 있음.


  • 아이코닉 스테이징(iconic staging) - 무대의 시각적 구성(mise-en-scène)이 현실과의 닮음과 유추적 관계를 통해 의미를 전달하는 연출 방식.


  • 전유(appropriation) - 기존 작품. 이미지. 기호를 빌려 의미와 권위를 비틀거나 재구성하고 새로운 매각에서 다른 의미(감각)를 생산하는 전략.


  • 카니자의 사각형(Kanizsa Rectangle) - 이탈리아의 심리학자 가에타노 카니자가 1955년에 소개한 착시 도형인 카니자의 삼각형을 응용한 것.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흰 삼각형이 보이게 만드는 주관적 윤곽(착각적 윤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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